2007.12.11 00:00

30대의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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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회사 앞으로 온 친구와 점심을 먹고 나자 불현듯 이 글을 다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30대의 여자들은 참으로 다양한 상황에 처해 있는데, 오늘 이 친구와 점심을 먹으면서, 보통 내 주변엔 많지 않은 30대 여자들에 대해 듣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 한 대여섯명의 중고등학교 동창들에 대한 얘기가 나왔을 거다.  결혼해 아기를 낳고, 집을 사고, 차를 사고, 애들 유치원 보내고, 집을 늘리고, 남편따라 해외로 또는 지방으로 나간 애들 얘기를 듣고 있는데, 저마다 조금씩 다른 듯 하면서도, 아기도 없고 집에서 살림해 본 적도 없는 내가 보기엔 '나와 딴세상에 산다'는 것으로 다 같게 느껴졌다.  대학 졸업한지 10년이 넘어가는데도, 내 전공을 밝히면 신기하다는 반응이 돌아오는 것 처럼, 그애들에게는 내가 사는 세상이 딴 세상이겠지만 말이다.

나에게 이 '딴 세상'이란, 회사라는 조직에 몸을 담아 달마다 돈을 받고, 상사 눈치, 후배 눈치 봐 가며, 줄을 서네 마네, 회사의 미래가 어떻네, 업계가 어떻네 하며 술마시며 떠들어대는 직장인들을 제외한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말한다.  내가 속속들이 다 알 수는 없지만, 오늘 몇년만에 들었던 동창들의 이름과 얼굴과 그들의 생활은 내겐 엄연히 '딴 세상'이다.


친구와 헤어져 사무실로 돌아오는 동안 불안감이 엄습했다.  난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가치있다고 생각하며, 항상 뭔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헉헉대며 살고 있는데, 훗날 '딴 세상'에서 상대적으로 편히 살아온 사람들보다 그다지 나은 것이 없으면 어떡하지? 


직장생활이 뭐 그리 큰 수도의 길이라고, 이렇게 생각한다는 것 자체가 자만일지도 모른다.  직장생활 하는 여자들이 그렇지 않은 여자들보다 나아야 할 당위성은 또 어디에 있는가.  어쨋든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는 꼼짝없이 매이는 것만 해도 직장생활은 녹록치 않고, 전업주부가 직장생활을 상상하는 것보다 직장여성이 전업주부를 상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좀더 상상 가능한 일이라는 점에서도 직장생활은 누구에게나 '고난이도'이다.


거두절미하고, 난 오늘 좀 부러웠는지도 모른다.  때로는 직장을 안 다니는 나를 상상해 보기도 하고, 가끔은 내가 애초부터 직장을 다니지 않는 여자였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를 상상하기도 한다.  이미 오래전에 결론을 내린 문제이기 때문에 상상은 상상으로 끝난다.  하지만, 오늘같이 '딴 세상'에 있는 또래 여자들의 얘기를 접하고 나면 머리가 복잡해지는 게 사실이다.


각자가 선택한 삶이고, 어떻게 살든 각자의 몫이 있기 마련이다.  삶은 다 다른 듯 같은 모습을 하고 있고, 저마다 치열하지 않은 삶은 없다.  하지만, '30대에는 팽팽하게 긴장하라'는 나름대로 성공한 여자의 조언에, 적어도 '나는 팽팽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는 걸, 그것이 이 얄궂은 직장생활에서 비롯될지언정, 나 자신 팽팽하게 긴장돼 있다는 점이 피곤하고 지치긴 해도, 그 사실을 행복해 할 거다.



30대의 여자

30대 여자가 처한 상황은 그야말로 다양하다.
일하는 여자, 아이 기르는 여자,
출산 유보하는 여자, 아이 학수고대하는 여자,
결혼한 여자, 결혼 압력 받는 여자, 결혼 안 하겠다는
여자, 하루에도 몇 번씩 이혼을 생각하는 여자, 이혼
해버린 여자, 사표 낼까 말까 하는 여자, 재취업에
고심하는 여자, 창업 고민하는 여자, 사표 압력 받는
여자,
남자에 지쳐있는 여자, 아이 기르기에 지쳐있는 여자,
친구 만나는 것도 잊은 여자, 친구 낙으로 겨우 버티는
여자, 너무 신나게 사는 여자, 너무 좌절되어 있는 여자,
피곤에 절어서 잠자리조차 싫은 여자, 쇼핑 중독증에 걸린
여자, 겉보기 여유와 달리 뒤쳐지는 느낌에 시달리는
여자, 24시간 내내 쫓겨서 자신에 대한 생각조차 못하는
여자 등 등.

징그러운 것은, 이런 다양한 상황의 대다수가 어느
여자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이른바 30대 여자의 복합
상황이다. 한 가지도 고민이 되지 않을 수 없는데 수많은
상황이 교차하니 얼마나 복잡한가. 그러니 그 많은 갈래
속에서 '자아 분열적'으로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게다가 세상은 30대 여자에게 말도 많다.
결혼해야지, 애 낳아야지, 집 장만해야지, 너무 늦었잖아,
너무 빠르잖아, 더 잘 해야잖아, 그만 둬야잖아 등 등.
20대 여자에게 주는 축복의 말, 격려의 말과는 달리 뭔가
침 돋은 말들이다. 찔리면 괜히 아프다. 괜히 찔리는 것
같다.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날 때> 에서 샐리의 여자 친구들이
모여서 하는 말처럼, '째각째각' 시계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바로 이래서 30대 여자들은 푸근하기 보다 공격적일
수밖에 없는 지도 모른다. 노처녀 증후군이 아니라 30대
여자 증후군일지도 모른다.
자칫하면 자아 분열적이 아니라 아예 진짜 분열할 지도
모른다. 물론 공격적인 것이 백 배 낫다. 좌절을 안으로
누르고 실망을 내색하지 않고 안으로만 접어두는 것보다는
공격적인 것이 훨씬 건강하다.
'내향 내(內)보다 '외향 외(外)' 할수록 진짜 분열할
위험은 줄어들 것이다. (공격적이라는 말이 싫으면
팽팽하게 바람넣은 공이라고 해도 좋겠다.)

나의 30대도 그렇게 공격적이었다.
팽팽한 긴장감의 연속이었다. 스트레스도 상당했다.
사방에서 내 뒷다리를 잡으려 드는 것 같고,
내 머리를 쑤셔 박으려는 듯 싶었고,
폐기물 처리하려는 듯 싶기도 했고,
내가 조금 움직임이 느려지면 금방 표가 나는 게 보여서
피곤했고,
주위에서 외형만 조명하려 드는 게 못마땅했고,
사회에서의 내 자리가 어디인가 고민했고,
몸과 정신과 마음이 다 팽팽한 긴장 상태였다.

그렇게 팽팽했던 30대를 나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
실제로 30대를 팽팽한 긴장 속에서 보낼 수 있어야 비로소
아주 괜찮은 마흔살 성년(成年) 넘어갈 수 있다는 게 내
지론이고 보면 말이다.
사십 대에는 조금 푸근해져보지 하고 생각했고,
하기는 실제로 사십대에는 나름대로 푸근해졌다.
(고백하자면, 아주 '쪼끔'.)

이런 자아 분열적인 30대 여자에 대해서는 아예 품평을
하지 않는 것이 맞을 듯싶다. "괜찮지, 싹수있어, 멋져,
당당해, 근사해?" 과연 어떤 말로 품평을 할 것인가. 이
힘든 시간을 보내는 30대 여자들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30대 여자를 품평하는 기준은 딱
한 가지다.

근사한 40대로 넘어갈 만큼 될성부른가?
"40대에 일하고 있지 않으면 전혀 일을 안한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는 소신이 뚜렷한 나다운 협량한 기준이지만
혜량해 주시라.('일'의 정의는 물론 넓다.)
자식의 미래에 목을 맬 것 같은 여자는 질색이고,
자기 남자의 진짜 인생에 무관심할 것 같은 여자는 정말
싫다. 땀흘려 일하는 귀중함을 모르는 여자,
자기 얼굴과 분위기 그대로에 책임지지 않을 것같은
여자는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남편과 자식 얘기밖에
못하는 여자는 괴롭고
자기 소신대로 사회평론 한 가닥 못 뽑는 여자는
재미없다.(이런 징후가 30대에 드러난다.)

30대 남자보다 30대 여자들이 눈에 띄는 것은 사실이다.
작가, 방송인, 영화인 등. 사회에서 30대 여자를
일부러라도 주목해준다. 감사해야 할 변화인지 아니꼽게
봐야 할 변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세월 좋아진 것으로 치자. 하물며 여자 35살이 되어야
비로소 매력적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이니 우리도 성숙해진
것 아닌가.

결례를 무릅쓰고 30대 그 여자들을 꼽아보자.
전혜린처럼 30대의 긴장을 앞에 두고 자살한 여자도 있다.
31살. 나는 비겁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전혜린 말처럼
그토록 진정하게 치열한 30대를 살았더라면 전혜린은 아주
근사한 40대 여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40대 뿐이랴,
50대, 60대, 70대도 기대해봤었음 직하다.

배우 이미연이 30대로 넘어가며 이혼을 했기에 독립
성장을 했다는 것은 아주 유쾌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본인의 심정은 여하하든, 박수 짝짝짝! 니콜 키드먼이
남편의 화려한 그늘에서 빠져 나온 35살, 흥행성 높은 톰
크루즈는 기웃거려 보지도 못한 아카데미상까지 탔으니
통쾌하기 짝이 없다.
영화에서 '버지니어 울프'로 분한 것을 보면 근사한
50대가 될 소지까지 보이니 박수 받아 마땅하다.

성공한 앵커, 가장 닮고싶은 여자로서가 아니라 한 당당한
여자 백지연이 30대에 투입한 자아 세우기 전투는 수많은
여자들에게 용기를 주었기 때문에 우리는 시원하다.
30대가 넘으면 화려한 화면의 앵커 자리에서 내려오는
여전한 관행에 끔찍해하면서 때를 기다려주자.

눈썰미 좋은 나에게 찍혔던 <박하사탕>의 문소리.
'20대 여자론 죽어도 주목을 못 받을 거야' 하던 내
예감을 거의 맞추고 올해 29살에 베니스영화제에 두 번째
갔다. '영원한 30대로 보이는 문소리'가 되면 좋겠다.
공격적이고 팽팽한 긴장감으로 감돌고, 치열한….

잊지 말자.
30대를 팽팽한 긴장감으로 잘 보낸 여자들이 비로소
매력적인 여성이 된다. 물론 그 팽팽한 긴장감만으로도
매력적이다. 여자 30대는 흔들리는 게 아니라 중심을
찾아가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남자는 '주어진 중심'이
있기에 흔들리지만, 여자는 자신의 중심을 만들어가기에
비록 분열적인 상황에서 훨씬 더 괴롭지만 훨씬 더
창조적이다.

다중의 압력 속에서 여자 30대는 지나간다.
10년이 긴 것 같은가? 쏜살같다. 화살 같은 30대를
꾸려가는 당신의 비결은? '늦기 전에' 누드집을 만들건,
더 늦기 전에 '성공 스토리'를 쓰려하건, 또는 일찍
창업을 하려 하건, 30대 여자여, 당신의 '외향 외'
공격성은 위대하다.

-건축가 김진애의 글-
Trackback 0 Comment 3
  1. 2008.05.13 09:46 address edit & del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낭만시인 2008.05.13 22:02 신고 address edit & del

      핫.. 고맙습니다. 38만원짜리 점심 그 글이 참 재밌었어요. 직장 초년병때 생각도 났구요. 우리 종종 보자구요~

  2. 희망 2010.09.22 23:37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ㄹㄷ 좋은 글 감사합니다.
    모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과 행복이 깃드시기를 기원합니다.
    건강 지킴이 내 병은 내가 고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