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5.26 11:40

그를 그리워 할 이유

박노자는 말한다.  노무현의 정치개혁이 통치 기간 5년 동안 성공했다면 이런 비극이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박노자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안다.  노무현 정부라는 한 조직이 5년이라는 기간 동안 송두리째 바꾸기엔, 대한민국이라는 사회도 녹록치 않은 '고집'이 있음을.

짧게는 박정희시대, 길게는 조선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오랜 시간 지속되어 온 경직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낱 개혁자의 힘은 노무현의 당선과 촛불 등으로 시민사회 성장을 이야기하는 2009년 오늘에도 말할 수 없이 미약하다.

내가 그를 좋아했던 건, 지금와서 돌이켜보니 이런 것이었다(그전에는 이 부분을 그리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는데, 그가 떠나고 나니 내가 왜 그를 좋아했었는지가 스스로 궁금해져 한번 따져보았다. 그다지 독특한 이유를 끄집어내지는 못했지만...). 



그는 내가 TV에서 보는 정치인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말이 되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었다.  TV 토론 프로그램이나 뉴스에 짤막하게 소개되는 청문회, 국감, 성명 같은 데서 똑바른 소리 하는 정치인은 드물다.  그런데 노무현은 검사들과의 대화 같이 일대다로 공격을 당하는 무대에서도 어찌됐든 앞뒤가 맞는 논리정연한 말을 했다(내가 요즘 이명박을 좋아하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의 연설에는 알맹이가 없다!).

주술관계를 엉망으로 구사하는 글과 말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로서, 그의 말은 앞뒤가 맞는다는 것 만으로도 속이 뻥 뚫리는 쾌감을 줬었다.

'이쯤되면 막 나가자는 거냐', '대운하, 제정신 박힌 사람이 투자하겠느냐', '대통령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든다' 등 그의 서거 후 뉴스에서 반복되고 있는 거침없는 언사가 나는 좋았다.  군더더기 없고 명확하지 않나.  '품위없는' 그의 말 뒤에는 모두 납득되는 이유가 있었고, 적확하여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었다.

그의 이런 성향이 '대통령은 모름지기 권위와 품위가 있어야지' 라고 생각하는 보수들에게 눈엣가시가 되고, 상대적으로 탈권위를 지향하는 진보들에게 환영을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의 서거를 아쉬워하는 마음은 저마다 다를 것이다. 되든 안되든 개혁을 끊임없이 시도했고, 그야말로 죽을 때까지 크게 변절하지 않았으며, 대다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지지자들을 거느린 이런 정치인이 대한민국에서 다시 나오기 힘들 거라는 아쉬움이 나는 가장 크다. 우리가 그를 오래도록 그리워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생각키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통령의 일기  (0) 2009.08.21
멘사게임에서 배운다  (1) 2009.07.23
그를 그리워 할 이유  (0) 2009.05.26
우리반 반장 임영박  (3) 2009.03.31
정명훈 막말 논란  (1) 2009.03.23
이명박 정부의 사자성어 사용법  (0) 2009.02.26
Trackback 0 Comment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