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5.25 20:29

내게 3개월의 시간이 남는다면.. 프랑소와 오종 'Time to leave'

이 생에서 살 날이 3개월 남았다면 난 뭘 할까?  무지막지하게 진부한 질문이지만 답은 쉽지 않다.  3개월..  하고 싶은 일 리스트만 잘 짠다면 결코 짧지 않은 시간.  과연 난 뭘 하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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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소와 오종의 2006년작 Time to leave.  잘 나가는 사진작가 로맹.  빈틈없는 외모만큼이나 신경질적이고 일에만 몰두하던 그는 말기 암 선고를 받는다.  의사와 대화를 마치고 나온 직후부터 그는 똑딱이 카메라로 주변을 찍어 댄다.  피사체를 응시하는 그의 시선은 절박하지만, 피사체를 결코 오래 보지 못하고 셔터를 누르자마자 시선을 피한다.

오종의 영화가 구구절절 설명할 리 없듯, 또 영화는 침묵한다.  일을 그만 두고, 가족들과 식사를 하고, 애인을 차 버리고, 할머니를 찾아가고, 옛 앨범을 보고, 여동생과 놀던 오두막에 가고, 무정자증 남편을 둔 부부를 위해 3명이 함께 하는 섹스를 감행하고, 제 손으로 머리를 깎고, 바다에 가 수영을 한다.  점점 말라 가는 주인공의 얼굴과 진통제 먹는 씬, 변기를 부여잡고 토하는 씬 등이 이 영화가 시한부 인생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구나 라는 걸 상기시킬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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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영화라고 주인공이 이것저것 드라마틱한 무언가를 했다면, '난 3개월 동안 뭘 하지'라는 생각이 안 들었을지도 모른다.  주인공이 한 일 중 특이한 일은 정자 기증을 위한 부부와의 섹스 외에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몇가지 돌이킨 것 뿐이다.  더구나 그 섹스 장면은 글쎄.. 영화 홍보하기엔 좋은 요소였는지 몰라도 내게 남은 건 없다.

아마 나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게 될 것 같다.  나름대로 추억이 남아있는 장소를 되짚으며 확인하면서, 각각의 장소에 있는 나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쳐다보기.  그 장소를 한번씩 돌아다니면서 내게 소중한 사람과 사물을 죽어서도 기억하기 위해 애쓰겠지.  이 영화의 주인공처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장소에서 죽을 수만 있다면 그것도 행복한 인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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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해변에서 석양과 함께 잠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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