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1.29 22:11

신경숙 '깊은 슬픔'

깊은 슬픔깊은 슬픔 - 10점
신경숙 지음/문학동네
각오를 했어야 했다. 아니다. 각오는 어느 정도 했었다. '신경숙은 너무 청승맞아 싫다'고, 그의 책 한권 제대로 읽지 않고도 생각했던 그 이유가 어딘가 있었음을 기억했어야 했다.

지난 여름 '리진'을 읽고 신경숙이 그리 청승맞지만은 않을 거라고 생각을 바꿨었다. 그리고, 어떤 블로그에서 '깊은 슬픔'의 저 유명한 '내 눈썹을 세어볼 정도면 틀림없이 넌 나를 사랑하는 거'라는 구절을 읽은 순간 문득, 말랑말랑한 연애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이내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했다. 개정판이어서 3년밖에 안되었어도 손떼가 겹겹이 묻어 있었다. 역시 신경숙은 그리고 그의 첫 장편은 팬이 많구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스토리. 시골에서 함께 자란 은서, 완, 세. 어린 시절 시골에서의 아픈 기억 하나씩 갖고 있는, 꼭 그렇게 불행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세 명은 내내 서로의 등만을 바라보다 이야기를 맺는다.

진하게 연애 한번 해 보지 못한 것도 죽기 전에 후회되는 것 중 하나라는 얘기처럼, 살면서 아픈 사랑의 기억 하나쯤은 오히려 삶을 의미있게 해 주기도 하는데, '깊은 슬픔'에서 이 아픈 사랑은 치명적이다. 끝 부분에서 은서의 동료 유혜란이 '마음 속의 말을 하지 않아 병이 생긴 것'이라고 했듯이, 단지 은서의 꽉 막힌 성격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신경숙은 작정했는지도 모른다. 하고 싶은 얘기를 가슴 속에 꾹꾹 묻어두고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기로. 책을 다 읽고 돌이켜보니, 한 권 내내 자기 의사 표현을 속 시원히 하고 있는 사람은 완의 부인 박효선, 은서의 동료작가 유혜란 등 주변인물 뿐이다. 은서의 동생 이수가 입대하기 전 '누나 어머니한테 좀 잘 할 수 없어?'하고 한마디 하는 장면에선 내 속이 다 시원했지만, 그도 이내 조용해지며 원래의 그로 돌아간다.

읽는 내내 자기 소리를 입밖에 내지 않는 등장인물 때문에 답답했지만, 또,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는 얼마나 하고 싶은 얘기를 다 하면서 사나 싶다. 때론 속엣 말 다 하다간 서로 상처만 줄까봐, 때론 체통 깎일까봐 참고 사는 게 우리지.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를 사랑한다 해도 그가 떠나기를 원하면 손을 놓아주고,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 그것을 받아들이고, 돌아오지 않으면 그건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었다고 잊어버리며 살'기 때문에, 이렇게 멀쩡히 살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인생에 너무 욕심을 내지 않고 말이다.
http://poeticworld.tistory.com2009-11-29T13:11:45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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