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6.14 22:25

아프가니스탄을 배우다_연을 쫓는 아이

연을 쫓는 아이연을 쫓는 아이 - 10점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이미선 옮김/열림원
독서의 미덕은 여러가지로 회자되지만, 그 중 내가 직접 가보지 못한 세계, 직접 겪어보지 않은 상황을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점은 손꼽히는 요소다. 하지만, 요즘 득세하고 있는 실용서 읽기에 빠져있다 보면, 책을 정보, 지식을 습득하는 참고서 쯤으로 여기게 되기 쉽다. 다른 세상 사람들의 삶을 묘사한 순수문학서를 읽더라도, '정말 이런 세계도 있구나'하는 충격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친정어머니에게 '연을 쫓는 아이'를 빌어 왔을 때도 그다지 큰 기대는 하지 않았었다. 저자 호세이니의 엘리트적 경력도 마땅치 않았고, 성장소설이라는 수식어도 '애도 아니고 무슨~' 하는 반감을 일으켰다. 그러나.. 이 모든 건 역시 나의 되먹지 않은 편견이었다.

'연을 쫓는 아이'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나고 자랐으나, 소련의 침략, 내전으로 이어진 자국의 역사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아프가니스탄 남자의 사십평생을 그린다. 그러는 동안, 전쟁으로 폐허가 되기 전 아프가니스탄의계급사회, 외세에 의해 운명을 지배당해 온 아프가니스탄인들의 삶을 함께 녹여낸다.

이야기는 주변을 돌다가도 주인공의 속죄에 대한 부채감이라는 이 소설의 핵심으로 돌아온다. 주인공 아미르는 열두살 때 하인 하산이 강간당하는 것을 목격하지만, 하산을 지키지 못하고, 자신의 잘못을 잊기 위해 오히려 하산에게 누명을 씌워 집에서 쫓아낸다. 아미르는 이 죄책감을 평생 안고 살다가, 서른여덟살에 하산의 아들을 만나, 죽은 하산 대신 그 아들을 거둠으로써 비로소 속죄하게 된다.

이야기의 초점은 '속죄'에 맞춰져 있으나, 내게는 이 속죄라는 주제가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배경을 두고 있음으로 해서 더욱 절절했다(글루미선데이, 쉰들러리스트 같은 수작들이 즐비하지만, 2차 대전과 독일 배경은 아무래도 진부한 것이다!).

나뭇가지에 새긴 작대기들을 장부삼아 신용거래를 할 정도로 문명화되지는 않았지만, 나름대로의 문화와 질서를 가지고 살아가던 아프가니스탄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지역으로 만들어 놓은 사람들, 상황들에 나는 분노했다. 멀리 떨어진 동양의 한 나라 국민일 뿐인 내가 분노를 느낀다는 것도 꽤 충격이었다.

미국과 상극인 탈레반도 사실은 아프가니스탄인들을 대변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아프간인들은 그들만의 소박한 문화를 그대로 누리길 바란다는 것을 알게 됐고,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좀더 잘 알고 싶어졌다.

책 읽고 나서 '내가 참 부족한 인간이지' 라고 생각한 게 아주 오래간만이었다.
http://poeticworld.tistory.com2008-06-14T13:25:250.3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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