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26 23:22

80, 90년대 가요의 추억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 후반까지 10여년은 내 감수성이 가장 충만했던 나이이기도 했지만, 지금까지 명반으로 꼽히는 가요가 참 많이 나왔던 시기다. 

들국화

당시 들국화의 광팬이었던 사촌언니 덕분에 나는 피아노 레슨을 오고 가는 차 안에서도 들국화 테입을 늘어날 때까지 들었다.  지금도 들국화 1집은 트랙 순서까지 다 기억이 날 정도다.  아마도 초등학교 5학년에게 들국화는 좀 어려웠던 듯 한데, 대학교 때 '매일 그대와'를 부르는 최성욱의 목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떨렸다.  처음 들었을 때는 이해 못했지만, 들국화 1집은 명반 중의 명반이다. 

유재하1집

중1 때 처음 짝이 된 친구가, '유재하라는 가수가 있는데 교통사고로 죽었다, 음반이 무지 좋다'는 얘길해줬고, 난 바로 테입을 샀다.  친구가 추천한 '지난날'이 처음엔 귀에 쏙 들어왔지만, 들을수록 '우울한 편지' '가리워진 길' '내마음에 비친 내모습' 등 정말 버릴 곡 없는 음반이다.

어떤날2집

역시 음악 좀 듣던 사촌언니의 추천으로 알게 된 아티스트.  솔직히 조동익, 이병우 모두 뛰어난 가창력을 지녔다고 할 수는 없지만^^ 둘의 목소리는 흡사 소년합창단 단원들의 목소리를 연상시키는 날 것 그대로의 매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1집에 더 점수를 주지만, 나는 2집이 좋다.  그중에서도 '그런 날에는' '초생달' '출발'이 나의 페이보릿.

조동익, 이병우는 이후 나의 음반 콜렉션에도 지대한(?) 영향을 줘, 그들이 낸 솔로앨범은 거의 빠짐없이 갖고 있다.  조동익의 '동경', 이병우의 '내가 그린 기린 그림은' '혼자 갖는 차 시간을 위하여' '생각없는 생각' 등.  아쉽게도 조동익은 더이상 앨범을 내지 않는 것 같고, 이병우는 영화음악 만드는 것만으로도 바쁜 것 같다.

김현철1집

아마 이 앨범을 냈을 때 김현철이 대학교 1학년이었나 그랬을거다.  지금 애아빠가 된 그의 모습에서는 전혀 안 그려지는 샤프한 턱선을 가진, 그 시대 꽤 훈남이었는데.. 떱~ 

이 음반에서 가장 먼저 주목을 받은 곡은 '오랜만에'.  따라하기는 쉽지 않지만, '이런 리듬 처음이야'를 연발하며 신선해 했던 기억이 난다.  대중적으로 사랑받은 곡은 단연 '춘천가는 기차'.  수많은 리메이크가 차례로 'You win!'을 선언하며 울고 가는 수많은 오리지날 중 하나다.  곡 전체를 지배하는 당김음으로 앨범을 통털어 가장 경쾌한 '동네', 미드 템포에 미묘한 멜로디를 넣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나의 그대는'도 좋다.

김현철은 이 앨범으로 일약 스타가 됐지만, 아쉽게도 이후에는 1집 만한 수작을 내지 못했다.  최근에 그 뭣이냐.. 키즈뮤직인지 하는 샤방한 분위기는 89년의 그의 음악을 아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생소하기 짝이 없는 그런 것이다(헐~).

빛과소금1집

이 그룹을 어떻게 알게 됐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어느 날 동아기획이라는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들의 산실이라는 기획사를 알게 됐고, 이들도 그 소속이라는 것만으로 앨범을 구입했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동아기획 뮤지션들이 많지 않아, 앨범도 드문드문 나올 뿐만 아니라, 주변 친구들은 잘 모르는 뮤지션의 음악을 듣고 좋아하는 것에 자뻑하여, 동아기획에서 내는 앨범이라면 맹목적으로 사 모았던 것 같다.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던 '샴푸의 요정'은 지금 들어도 잘 모르겠고(머리 감는 모습이 이쁜 여자를 사랑했다는 거야, 아니면 아침에 머리 감을 때마다 생각나는 여자가 있다는 거야 ㅎㅎ), 내가 가장 좋아했던 노래는 '그대 떠난 뒤'였다.  최근 나얼이 리메이크 했다는데 못 들어봤다.

무한궤도1집, 공일오비1집, 신해철2집

명문대생 밴드로, 당시 대다수의 중고생 소녀팬들을 한번에 흡수해 버린 무한궤도와 이를 계승한 공일오비.  아리송한 그룹 이름, 노래마다 싱어가 바뀌는 객원가수제 도입 등 공일오비는 학벌 만큼이나 '있어 보이는' 모든 걸 갖췄던 그룹이었다.   

명반이라기 보다는, 입시에 찌들어 있던 고등학교 시절, 잘 나가는(좋은 학교 다니고 취미로 음악까지 하니 더 멋질 수가 없었지!) 오빠들이 질러대는 '있어 보이는' 노래를 들으며, 대학이라는 목표(또는 환상)를 다졌던 게 생각난다.

무한궤도 1집의  '여름이야기'는 첫사랑을 다시 만나 설레는 감정이 실려있는 가사를 들으며 '내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바람을 부추기는 노래였다.  경쾌한 멜로디에 막바로 그림이 그려질 것 같은 가사가 내 일인양 설레였다 

여름날 햇빛속에 옛동네를 걸어가다
건널목 앞에 있는 그녀를 보았지
조금은 변한듯한 모습 아쉽긴했어도
햇살에 찌푸린 얼굴은 아름다웠지

윤종신의 첫 히트곡인 공일오비1집의 타이틀 '텅빈 거리에서'.  냉정하지만 윤종신도 먹고 살기 위해(또는 자기 취향일지 몰라도) '신비주의' 벗어던지고 어두운 세계 떠나 밝은 노래 부르고 밝은 곳에서 놀다가 너무 밝아져 버린 케이스다.

윤종신이나 김현철도, 조용필이나 김수철, 가깝게는 이승철처럼 일관된 자기 음악세계 지키면서 여타 활동을 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그들의 음악을 참 좋아했던 사람으로서 개인적인 아쉬움이 남는다.  적어도 노래방에서 '텅빈거리에서'를 들으며 '라디오스타'의 윤종신 얼굴을 떠올리지 않으려 애쓰는 일은 하지 않아도 될 것 아닌가 말이다.

끝으로, '위스키 브랜디 블루진 하이힐 콜라~' 멜로디가 없는 저음의 랩으로 시작되는 신해철2집의 '재즈카페'는 당시 랩이 뭔지도 몰랐던 중고생들의 암기 대상이었고, 발라드 '내 마음깊은 곳의 너'는 발라드 명곡 중 하나로, 아직도 90년대 학번들의 노래방 18번 중 하나다.

[Ending Comment]
써놓고 보니 참 별것 아닌 자질구레한 얘기들이 노래마다 가수마다 겹겹이다.  

이 노래들만 들으면 다시 고등학생으로 돌아가서 바로 그때 그 느낌이 생생하니, 이 노래들을 들을 때 기분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어쨋든 지금도 이 노래들은 다시 듣고 싶고, 들으면 설레고 짠하니, 기분이 나쁜건 아닐게다.  오히려, 내 감수성을 채워줬고, 지금까지 그 감성을 기억할 수 있게 해준 이 노래들에 감사라도 해야 할 듯!  Abba의 Thank you for the music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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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back 0 Comment 2
  1. 꽃가루 2008.10.30 19:12 address edit & del reply

    ㅎㅎ 재밌네. 예전부터 생각했던 거지만 신해철 좋아한 거는 좀 의외. 노래를 좀 못하자나...
    김현철의 변질은 거참 생각할수록...거시기하다.

    • 낭만시인 2008.10.31 13:28 신고 address edit & del

      신해철이 좋은게 아니고, 내마음깊은곳의너가 좋은기지~